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김성한 구타 사건 (문단 편집) == 사건 이후 == 이 사건으로부터 1년 후인 2003년 7월에 두산에서 KIA로 트레이드된 [[최용호(야구)|최용호]]는 트레이드를 거부하고 잠적 소동을 일으켰다. [[이호성 살인 사건]] 이후 이러한 체육계의 악습이 원인이란 분석이 나오기도 했는데 [[이호성]]도 해태-KIA에 속해 있었던 전직 선수다.[* [[해태 타이거즈]]의 [[군기반장]] 계보는 [[김일권]] - [[김성한]] - [[이순철]] - [[송유석]] - [[이호성]]으로 이어졌다.] 김성한은 [[2009년]] [[천하무적 야구단]]의 감독 겸 조언자로 복귀했는데 프로야구로의 복귀는 어렵다는 전망이 많았으나 [[2012년]] [[10월]]이 되어서야 [[한화 이글스]]의 수석코치로 야구계에 복귀했다. 여담이지만 대표적인 스파르타 성향이었던 [[김응용]] 당시 삼성 라이온즈 고문이자 전 [[해태 타이거즈]] 감독이 [[2011년]]에 한 인터뷰에서 '''"나는 누구처럼 선수 때려서 해골 깨지게 하는 짓까지는 안 했다."'''는 말로 [[http://news.naver.com/main/read.nhn?mode=LSD&mid=sec&sid1=107&oid=295&aid=0000000645|이 사건을 은근슬쩍 꼬집었다.]][* 사실 김응용도 해태 감독 시절에 승리투수 요건을 갖췄음에도 [[방수원]]을 조기강판시키거나 [[한대화]]를 발로 걷어차는 모습을 보이면서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. 그러나 한대화는 이후 선수에서 은퇴하고 나서도 김응용이 사장으로 있었던 [[삼성 라이온즈]]의 코치로 부임하는 등 자신이 재기한 이유에 대해 김응용의 감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김응용의 팔순연 때 방수원과 한대화를 불러서 당시의 행동을 후회하는 발언을 하였지만 선수를 때려서 해골 깨지게 하는 짓까지는 안 했으니 [[거짓말은 하지 않는다|거짓말은 하지 않았다.]] --[[호세 카브레라|외국인 선수]]에게 헤드락을 걸어본 게 전부다-- 한대화나 김성한이나 프로 데뷔 이후 김응룡 밑에서 선수-코치 생활까지 줄줄이 했지만 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던 한대화와 달리 김성한이 문제였을 뿐.] 2018년 김성한은 [[진천선수촌]]장으로 내정되었으나 철회되었는데 이는 프로 선수 출신이 아마추어 선수를 관장하는 촌장이 되는 것에 대한 불만족도 있었지만 '''이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철회됐다는 것'''이 사실상 정설이다.[* 더군다나 김성한이 진천선수촌장으로 내정된 시기는 [[2019년 체육계 성추문 폭로사건]]으로 대한민국 스포츠계가 제대로 뒤집어졌을 때였다.] 그리고 감독이 선수를 구타하는 악습은 18년이 지나도록 하나도 개선되지 않아 결국 2020년 6월 26일 여자 [[트라이애슬론]]의 [[최숙현]] 선수가 [[자살]]로 22년의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. 심지어 가해 감독과 선수들은 재판석에서 유족들의 면전에 '죽은 건 안타까운데 우리가 사과할 일은 없다고 생각한다'는 망언을 퍼부어 온 국민을 공분하게 하였다. 2022년 7월 [[전설의 타이거즈]]에 김성한과 [[구한성]]이 출연하자 어느 시청자가 김성한이 감독을 맡았던 시절 논란이 많았던 국토대장정에 대해 질문할 때 김성한이 이 사건을 다시 꺼냈는데 [[진실은 저 너머에|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구타 사건의 원인이 있다고만 간략히 언급했다.]] [각주] [[분류:해태-KIA 타이거즈/사건사고]][[분류:폭력사건]][[분류:2002년/사건사고]][[분류:대한민국의 야구인 사건 사고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